2007/11/09 10:28

F1의 역사 - 요약

그랑프리에서 시작된 오래된 역사

F1의 역사는 FIA(세계자동차 연맹)가 F1그랑프리라는 이름 으로 첫 대회를 열었던 1950년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대의 그랑프리에서는 푸조,메르세데스(다임러), 피아트 등이 활약하고 있었다.
한동안 10리터가 넘는 거대엔진이 점령했었지만 1912년 푸조가 7.6리터 DOHC엔진을 선보이
며서 신기술 경쟁에 들어갔다.
1914년 1차대전이 시작되면서 1918년까지 4년간 열리지 못했지만 전후 항공기 엔진 기술 등이 사용되면서 성능이 빠르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대전이 시작되는 1939년까지는 자동차 역사에 있어 최대의 황금기 중 하나로 꼽힌다.
피아트, 알파로메오, 부가티 등 경주차가 서킷을 누볐고 전설의 드라이버인 알베르토 아스카리와 타지오 누볼라리 등이 등장했다.
페라리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 역시 알파로메오 드라이버로 출발, 팀매니저로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한편 30년대 독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자동차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좋은 홍보도구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포루쉐박사가 벤츠에서 완성한 수퍼차저(당시는 터보가 아직 없었다)를 엊은 벤츠, 아우토유니온 경주차가 그랑프리를 휩슬었다.
독일의 내셔널 컬러인 은색 차체 때문에 ‘실버 애로우’(은빛 화살, Silver Arrow)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2차대전이 시작되자 경주차들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깊은 잠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자 5년간 스피드에 굶주렸던 스피드광들은 종전 1개월도 되지 않은 그 해 9월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전후 최초의 자동차 경주를 열었다.
폭격 속에서 용케 살아 남은 경주차들이 제대로 된 경주를 펼쳤을 리 없지만 사람들은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종전과 함께 F1 월드시리즈 탄생

F1의 모태가 되는 FIA가 탄생한 것은 1946년 말이다.
AIACR(국제 자동차 공인 클럽협회)에서 발전된 FIA는 세계적으로 열리는 자동차 레이스를 총괄하는 단체였다.
그들은 F1과 F2 두가지 규정을 만들어 2차대전 이전 유럽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던 수많은 그랑프리를 하나의 경주로 모았다.
이 때문에 각각의 경주를 아직도 그랑프리라고 부르고 있다.
F는 규정을 뜻하는 포뮬러(Formular), 1은 ‘최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경주차는 1인승으로 엔진은 수퍼차저가 1.5리터, 자연흡기는 4.5리터였다.
F2는 0.5리터(수퍼차저)와 2.0리터로 F1 경주차를 GP머신, F2 경주차를 부아트르트(소형차라는 뜻)
머신이라고 불렀다.

역사적인 세계선수권으로서 모양새를 갖춘 F1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1950년.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였다.
당시 시리즈 챔피언은 주제페 파리나가 몬 알파로메오, 왕년의 강자답게 1~3위를 독식했다.
패전국 독일 메이커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F1은 알파로메오, 페라리,
마세라티 등 이태리 메이커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건너 온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알파로메오로 챔피언에 올랐다.
F1 역사상 최강으로 손꼽히는 판지오는 1957년까지 5번이나 챔피언에 오르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54년 벤츠가 다시 복귀하면서 더욱 치열해진 F1은 60년대 들어 영국팀들이 휩쓸기 시작했다.
콜린 채프먼이 이끄는 로터스는 천재 드라이버라는 짐 클라크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고 BRM, 쿠퍼, 반월, 브라밤 등도 챔피언에 올랐다.

1962년 로터스는 최초의 모노코크 보디를 가진 ‘25’를 선보였고 66년 엔진 규정이 1.5리터에서 3리터로 대형화되면서 다기통화 되었다.
이듬해 등장한 코스워스(포드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었다)의 V8 DFV엔진은 F1역사를 장식한 걸작
이다.
68년 시판된 이후 여러 경주차에 얹혀 15년간 155회의 우승을 일구어 냈다.
1964년 F1에 데뷔한 혼다는 65년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일본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충격
을 몰고 왔다.
67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미국차로는 처음으로 덴 거니가 모는 이글이 우승을 차지하는 등 60년대의 F1은 변화와 이변이 많았다.

첨단기술과 스타 드라이버의 등장

70년대의 F1은 경주차 색깔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예전에는 팀마다 국가를 상징하는 색을 이용했었다.
이탈리안 레드, 프렌치 블루, 저먼 실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재패니즈 아이보리 등이 있었다.
하지만 70년대부터 경주차는 스폰서 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셔널 컬러의 전통을 지금까지 고수한 팀은 페라리뿐이었다.

공기역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면과 차체 바닥 사이에 공기흐름을 이용해 다운포스를 얻는 윙카가 등장했다.
78년 챔피언에 오른 로터스79가 주인공이다.
77년에는 F1 최초의 터보엔진이 르노에서 등장했다.
컴팩트한 엔진으로 높은 출력을 쏟아낼 수 있어 87년까지 터보의 전성기가 계속되었다.

드라이버로는 재키 스튜어트와 에머슨 피티팔디, 제임스 헌트, 니키 라우다가 손꼽힌다.
페라리를 몰던 니키 라우다는 75년 사고로 가드레일에 충돌하면서 큰 화상을 입었지만 6주후 다시 경주차에 올랐고 이듬해와 84년에 챔피언에 올라 지금까지도 ‘불사조’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80~90년대의 F1은 맥라렌과 윌리엄즈라는 최강의 라이벌이 격돌하는 시기였다.
윌리엄즈가 81,86,87,92,93,94,96년 그리고 맥라렌이 84,85,88,90,91,98년 컨스트럭터즈 챔피언
에 올랐었다.
68년 퇴진했던 혼다는 83년 엔진 메이커로 F1에 복귀해 86년 윌리엄즈와 함께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맥라렌 경주차에 얹히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드라이버 중에는 알랭 프로스트와 아이르튼 세나가 쌍벽을 이루었다.

8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터보 엔진은 1천먀력이상의 출력을 냈지만 자연흡기 엔진과의 차이가 심해 경주의 재미는 반감되었다.
FIA는 88년 터보를 금지하고 자연흡기 3.5리터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고출력을 얻어내기 위한 메이커의 노력으로 1만4천rpm의 고회전이 가능해졌고 자금력이 부족한 메이커는 여전히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이밖에도 액티브 서스펜션(92,93년 윌리엄즈가 사용), ABS, AT 등의 첨단장비 사용을 금지했다.

이런 규정 변화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95년 3전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F1최악의 사건이 벌어졌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천재 드라이버 아이르튼 세나가 보호벽을 들이받고 사망한 것이다.
FIA는 경주차 안전성을 강화하고 속도를 줄이기 위해 배기량을 낮추는 등 규정을 바꾸었다.


막대한 자금력과 첨단기술의 만남

이런 규정 변화에도 불구하고 F1 경주차들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고의 스피드가 기본정신인 F1에서 당연한 일이다.
새 규정이 생기면 여기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기술로 속도를 높인다.
거대기업들의 막대한 자금력과 첨단기술의 결합으로 가능한 일이다.

최근의 F1은 페라리와 맥라렌의 치열한 선두경쟁이 볼만하다.
드라이버들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어 독일의 신성 미하엘 슈마허(페라리)와 핀란드 출신 미카 하키넨(맥라렌)의 자존신 경쟁도 뜨겁다.
또 혼다와 BMW 등 왕년의 컨스트럭터즈 챔피언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어 흥미를 더하고 있
다.

F1의 앞날에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2005년부터는 가장 큰 스폰서인 담배회사들이 광고를 할 수 없게 된다.
또 최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고 예전에 비해 F1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F1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이다.
최고의 드라이버들이 최고의 경주차를 몰고 서킷을 누비는 모습은 항상 전율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선다.

어떻게 열리나 200년에는 3월12일 호주 개막전을 시작으로 10월22일 말레이시아 최종전까지 총 17전으로 치러진다.
11팀 22명의 드라이버와 경주차들이 서킷에서 속도경쟁을 벌인다.
시리즈 회수는 1950년 7회에서 77년 17회까지 늘었다가 이후 16회로 줄어들었으며 96년부터 다시 17전으로 조정되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자유주행을 마친 차들은 토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예선전을 치룬다.
차 한대 당 최대 12랩을 돌 수 있고 이 때 수립된 가장 좋은 랩타임(서킷을 한 바퀴 도는 시간)에 따라 출발순서(스타팅 그리드)가 정해진다.
이 때 가장 앞자리를 ‘폴 포지션’이라고 하며 폴포지션에서 출발해 1위로 골인하며 ‘폴 투 피니시’라고 부른다.

경기가 끝나면 1위 10점, 2위6점, 3위4점, 4위3점, 5위2점, 6위1점 등 상위 6명에게 점수를 준다.
각 그랑프리에서 얻은 점수를 더해 최종전까지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드라이버가 그 해의 챔피언이 된다.
이것이 ‘드라이버즈 챔피언쉽’이다.
한 팀에 두 명의 드라이버가 있기 때문에 둘의 점수를 합산해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쉽’을 겨룬다.
지난 해의 경우 미카 하키넨(맥라렌)이 드라이버즈 챔피언을 차지했다.
드라이버즈 챔피언쉽은 F1역사가 시작된 1950년부터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쉽은 1958년부터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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