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마차의 시대
인간이 고대인류문명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 원형바퀴와 달구지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6천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소달구지로 수확한 곡물을 운반하였으나 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속도욕망은 야생의 말을 가축으로 키워 마차를 만들었으며, 이 발명은 기원전 3천년경 중앙아시아의 아리아족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발명한 마차는 세계 각처로 번져나가 고대 로마제국은 마차가 끄는 전차군단으로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양 세계를 정복하였고, 유럽전역에 도로망을 닦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우마차를 이용하면서 풍력이나 수력에 의해 움직이는 탈 것(Vehicle)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기 힘으로 달리는「말 없는 마차(Horseless Wagon/Horseless Carrige」의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1250년 영국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베이컨은 그의 저서「과학적 근대철학」에서 자동차, 비행기 기선 등을 예언하였고, 15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대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0년 태엽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스케치로 남기었다
2. 증기자동차의 출현
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증기엔진 시대를 열었고, 1769년 프랑스의 포병장교인 니콜라스 죠셉 뀌뇨는 2기통 증기엔진을 탑재한 3륜 증기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험도중 사고를 일으켜 감옥에 갖히는 불운을 겪었다. 그후 끊임없는 증기자동차의 실용화 노력은 이어져 1820∼1840년에 걸쳐서는「증기자동차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증기자동차의 보급으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도로 파손과 검은 연기로 시민의 반감이 일어나자 자동차 발달을 못마땅히 여겨 온 마차와 철도업자들이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는 압력을 넣어 영국은 1865년「적기조례(Red Flag Act」라는「세계 최초의 교통법」이 제정되어 영국에서는 자동차의 발달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증기철도와 기선의 전성시대
1825년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증기철도는 급속하게 발달하여 1838년 영국의 철도길이는 8백km를 넘어섰고 10년후에는 8천km로 10배나 증가하였다. 또 유럽대륙과 미대륙에서도 철도가 급격히 보급되어 자동차와 비행기가 출현하기까지 증기기관 철도와 기선은 19세기 교통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4. 가솔린 자동차의 발명
실린더내에서 직접 연료를 연소시켜 그 폭발력으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의 실험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용화된 것은 1862년 프랑스 르노아르의 2기통 석탄가스 엔진이었다. 그후 1870년 독일의 오토가 가솔린을 이용하여 열효율이 높은 4기통 엔진을 발명한데 이어 오토의 조수인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 Daimler)는 1885년 자동차용 가솔린엔진을 개발하였고 이듬해인 1886년 2인승 4륜마차의 탑재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다. 또한 같은 해 독일의 발명가인 칼 벤츠(K. Benz)도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3륜자동차를 개발하였는데, 이 두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모른채 자동차를 발명하여 독일은「근대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 두사람을 갖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고, 이들이 세운 회사는 1926년 합병하여 유럽 최대의 복합기업인 다임러 벤츠그룹(Daimler Benz)과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 AG)로 성장하였다.
5. 전기자동차의 출현과 퇴진
전기자동차는 프랑스 라파엘과 영국의 포크등에 의해 개발되어 가솔린 자동차보다 3년 먼저 실용화되었으며, 초창기인 1900년 전후까지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압도하였다. 또 1899년 자동차레이스에서 전기자동차가 시속 105km를 기록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축전지의 무게가 1톤 가까이나 되며 주행거리도 짧고 충전시간도 길어 내연기관자동차에 밀려 1920년경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는 1886년 독일에서의 자동차 발명으로 시작되어 100여년에 걸친 변화와 경쟁을 거듭하면서 20세기 근대산업발전을 선도하였고 현대과학문명의 꽃을 피웠다. 자동차의 최초 발명이후 지난 100여년간 기본컨셉트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생산방식, 규모, 조직 등과 기술의 진보로 얻어진 경제성, 편리성, 거주성, 생산성 등은 초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변혁이었다. 초기 자동차산업의 생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9세기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각종 기계공업제품의 생산이 수공업방식에서 직공을 중심으로 기술이 축적되어 갔으며 특히 19세기말 미국에서「Singer」와「Colt」 브랜드로 유명한 재봉기나 총기류의 대량생산에서 얻어진 기계설비를 이용한 생산시스템은 20세기초 미국 자동차산업의 도입기반이 되는 하부구조가 되었다. 이 하부구조를 바탕으로 1910년대 미국의 포드사가 주도하는 주문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의 대전환을 세계 자동차 산업발전과정의 그 첫 시발이라고하면, 1950년대 유럽의 생산자가 미국의 대량생산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의 다양화는 제2의 대전환이었으며, 1960년대말 일본의 생산자가 생산조직과 방식의 획기적인 변화로 값싸고 품질 좋은 차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이 제3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생성
자동차 발명의 영예는 독일이 갖고 있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자동차를 위험물로 취급하여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함으로써 산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1889년 프랑스 파나르 르바소는 독일 다임러사로부터 제작권을 획득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1890년 이후 프랑스의 르노, 푸조, 이태리의 피아트 등 소규모 메이커가 수없이 생겨나 수공업형태 생산으로 한 종류에 한 대꼴로 만들어지는 오늘의 시작차와 같은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수요도 부자들의 오락용에 불과하였다. 그 후 생산량은 서서히 증가하여 1900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세계자동차 시장의 58%를 차지하면서 세계 총생산 규모는 년간 5만대에 이르렀다.
한편 미국은 철도건설에 주력하여 1850년에 이미 철도총길이가 1만4,520km에서 20세기초에는 40만 km를 넘어서는 철도대국이 되어 있었다. 미국대륙은 더욱 광활해졌고 개인주의적 국민성과 풍부한 석유자원에 힘입어 자동차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는 기반이 조성되어 1899년 올즈모빌사가「세계자동차의 메카」로 불리우는 디트로이트에 세워져 훗날 제너럴 모터스(GM)의 탄생기반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1903년 포드 자동차사를 창설한 포드 1세가 포드A형을 생산하기 시작할 즈음 당시 미국의 총생산은 1만 1천대로 유럽에 비해 약간 늦은 출발을 하고 있었다.
포드 혁명과 GM의 세계제패
포드사는 1909년 1500만대 생산기록을 갖는 세계 자동차사상 초유의 단일모델인「포드 T-Model」을 개발하였다. 「포드혁명」 또는「포드생산방식」으로 불리우는 포드시스템은 컨베이어에 의한 대량 생산방식으로 자동차생산의 혁명을 이루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보급하게 되어 미국은 세계최초로「자동차대중화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 미국 자동차시장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 총생산 362만대 가운데 포드가 167만대를 기록한 1923년 이듬해부터 생산과잉과 대체수요 발생으로 단순한 디자인의「포드 T-Model」에 싫증을 느낀 수요자가 외면하기 시작하였고, 포드사는 다양한 수요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GM의 추격에 밀려 결국 오늘날까지 GM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편 1908년 GM을 창업한 위리엄 듀란은 2년후「Buick」,「Olds」,「Cadillac」등 25개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1923년부터 알프레드 슬로안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세계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졌다.
BIG3의 세계진출과 유럽시장의 확대
미국의 BIG3(GM, FORD, CHRYSLER)는 1920년대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에 진출하여 유럽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 진출한 미국의 현지조립공장은 유럽의 고관세장벽 때문에 현지에서 일괄생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꾸었으며, 미국의 제조기술과 유럽메이커의 최고기술을 향한 노력이 더해져 유럽시장은 적정생산규모를 확보하였고, 다양한 제품개발로 1950년부터 이후 세계 최대의 생산지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초 유럽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장의 85.9%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은 해외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시장변화에 둔감하였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 기존 제조방식이 최적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유럽메이커들은 제품차별화와 시장세분화 전략을 통해 서서히 세계자동차산업의 강자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자동차산업의 경쟁대열에 진입하면서 독특한 생산방식을 개발하는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한편 1970년대초 유럽의 시장규모와 생산대수는 미국을 능가하기에 이르렀으며, 1950년 37만대에 불과하던 수출은 1970년 189만대로 증가하여 세계 최대의 수출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본의 세계제패와 미·일· EC의 3극화체제 형성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1920년대 GM과 FORD의 진출로 대량생산의 기반이 다져졌으나, 1936년 외국기업을 배제하는 법규가 제정되어 독자적으로 자동차산업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목적과 트럭중심의 형편없는 구조로 산업은 매우 취약하였다. 1950년대에 들어 한국전쟁에 따른 특수경기, 군수산업기술자의 민수사업대거 참여, 정부와 업계의 외국차 진출제한, 승용차 중심으로의 산업전환 등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1960년대들어 세계무역장벽 완화로 자동차무역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일본도 수출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일본은 새로운 산업조직과 특유의 생산방식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었고「도요다생산방식」으로 대표되는 「간판방식」과「JIT방식」에「TQC」가 확산되면서 일본 특유의 제조철학이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제조기술은 가일층 개선되었고 여기에 1968년부터 불붙은 자동차대중화(Motorization)로 내수기반이 확장되면서 대량생산과 저코스트의 생산자로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갔다.
특히 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때 연료소모가 적은 소형차급에서 완전경쟁우위를 확보함으로써 1970년에 이미 530만대 생산기록을 세우고, 1974년에는 268만대 수출로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하여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3극화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신흥공업국의 세계 진출
미국·일본·유럽의 3극체제 속에서 1980년대부터는 개발도상국과 동구제국이 저임금과 양산체제를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국가가 별로 없었다. 한국은 1962년 완성차 수입 금지와 함께 국산화 정책, 중화학공업 정책, 수출산업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80년대 고도성장에 따른 자동차대중화 진입을 바탕으로 소형차가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세계 5위의 생산대국으로 부상하여 신흥공업국 중 가장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고대인류문명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 원형바퀴와 달구지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6천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소달구지로 수확한 곡물을 운반하였으나 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속도욕망은 야생의 말을 가축으로 키워 마차를 만들었으며, 이 발명은 기원전 3천년경 중앙아시아의 아리아족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발명한 마차는 세계 각처로 번져나가 고대 로마제국은 마차가 끄는 전차군단으로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양 세계를 정복하였고, 유럽전역에 도로망을 닦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우마차를 이용하면서 풍력이나 수력에 의해 움직이는 탈 것(Vehicle)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기 힘으로 달리는「말 없는 마차(Horseless Wagon/Horseless Carrige」의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1250년 영국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베이컨은 그의 저서「과학적 근대철학」에서 자동차, 비행기 기선 등을 예언하였고, 15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대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0년 태엽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스케치로 남기었다
2. 증기자동차의 출현
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증기엔진 시대를 열었고, 1769년 프랑스의 포병장교인 니콜라스 죠셉 뀌뇨는 2기통 증기엔진을 탑재한 3륜 증기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험도중 사고를 일으켜 감옥에 갖히는 불운을 겪었다. 그후 끊임없는 증기자동차의 실용화 노력은 이어져 1820∼1840년에 걸쳐서는「증기자동차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증기자동차의 보급으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도로 파손과 검은 연기로 시민의 반감이 일어나자 자동차 발달을 못마땅히 여겨 온 마차와 철도업자들이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는 압력을 넣어 영국은 1865년「적기조례(Red Flag Act」라는「세계 최초의 교통법」이 제정되어 영국에서는 자동차의 발달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증기철도와 기선의 전성시대
1825년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증기철도는 급속하게 발달하여 1838년 영국의 철도길이는 8백km를 넘어섰고 10년후에는 8천km로 10배나 증가하였다. 또 유럽대륙과 미대륙에서도 철도가 급격히 보급되어 자동차와 비행기가 출현하기까지 증기기관 철도와 기선은 19세기 교통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4. 가솔린 자동차의 발명
실린더내에서 직접 연료를 연소시켜 그 폭발력으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의 실험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용화된 것은 1862년 프랑스 르노아르의 2기통 석탄가스 엔진이었다. 그후 1870년 독일의 오토가 가솔린을 이용하여 열효율이 높은 4기통 엔진을 발명한데 이어 오토의 조수인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 Daimler)는 1885년 자동차용 가솔린엔진을 개발하였고 이듬해인 1886년 2인승 4륜마차의 탑재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다. 또한 같은 해 독일의 발명가인 칼 벤츠(K. Benz)도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3륜자동차를 개발하였는데, 이 두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모른채 자동차를 발명하여 독일은「근대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 두사람을 갖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고, 이들이 세운 회사는 1926년 합병하여 유럽 최대의 복합기업인 다임러 벤츠그룹(Daimler Benz)과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 AG)로 성장하였다.
5. 전기자동차의 출현과 퇴진
전기자동차는 프랑스 라파엘과 영국의 포크등에 의해 개발되어 가솔린 자동차보다 3년 먼저 실용화되었으며, 초창기인 1900년 전후까지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압도하였다. 또 1899년 자동차레이스에서 전기자동차가 시속 105km를 기록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축전지의 무게가 1톤 가까이나 되며 주행거리도 짧고 충전시간도 길어 내연기관자동차에 밀려 1920년경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발전과정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는 1886년 독일에서의 자동차 발명으로 시작되어 100여년에 걸친 변화와 경쟁을 거듭하면서 20세기 근대산업발전을 선도하였고 현대과학문명의 꽃을 피웠다. 자동차의 최초 발명이후 지난 100여년간 기본컨셉트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생산방식, 규모, 조직 등과 기술의 진보로 얻어진 경제성, 편리성, 거주성, 생산성 등은 초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변혁이었다. 초기 자동차산업의 생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9세기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각종 기계공업제품의 생산이 수공업방식에서 직공을 중심으로 기술이 축적되어 갔으며 특히 19세기말 미국에서「Singer」와「Colt」 브랜드로 유명한 재봉기나 총기류의 대량생산에서 얻어진 기계설비를 이용한 생산시스템은 20세기초 미국 자동차산업의 도입기반이 되는 하부구조가 되었다. 이 하부구조를 바탕으로 1910년대 미국의 포드사가 주도하는 주문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의 대전환을 세계 자동차 산업발전과정의 그 첫 시발이라고하면, 1950년대 유럽의 생산자가 미국의 대량생산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의 다양화는 제2의 대전환이었으며, 1960년대말 일본의 생산자가 생산조직과 방식의 획기적인 변화로 값싸고 품질 좋은 차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이 제3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생성
자동차 발명의 영예는 독일이 갖고 있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자동차를 위험물로 취급하여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함으로써 산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1889년 프랑스 파나르 르바소는 독일 다임러사로부터 제작권을 획득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1890년 이후 프랑스의 르노, 푸조, 이태리의 피아트 등 소규모 메이커가 수없이 생겨나 수공업형태 생산으로 한 종류에 한 대꼴로 만들어지는 오늘의 시작차와 같은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수요도 부자들의 오락용에 불과하였다. 그 후 생산량은 서서히 증가하여 1900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세계자동차 시장의 58%를 차지하면서 세계 총생산 규모는 년간 5만대에 이르렀다.
한편 미국은 철도건설에 주력하여 1850년에 이미 철도총길이가 1만4,520km에서 20세기초에는 40만 km를 넘어서는 철도대국이 되어 있었다. 미국대륙은 더욱 광활해졌고 개인주의적 국민성과 풍부한 석유자원에 힘입어 자동차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는 기반이 조성되어 1899년 올즈모빌사가「세계자동차의 메카」로 불리우는 디트로이트에 세워져 훗날 제너럴 모터스(GM)의 탄생기반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1903년 포드 자동차사를 창설한 포드 1세가 포드A형을 생산하기 시작할 즈음 당시 미국의 총생산은 1만 1천대로 유럽에 비해 약간 늦은 출발을 하고 있었다.
포드 혁명과 GM의 세계제패
포드사는 1909년 1500만대 생산기록을 갖는 세계 자동차사상 초유의 단일모델인「포드 T-Model」을 개발하였다. 「포드혁명」 또는「포드생산방식」으로 불리우는 포드시스템은 컨베이어에 의한 대량 생산방식으로 자동차생산의 혁명을 이루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보급하게 되어 미국은 세계최초로「자동차대중화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 미국 자동차시장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 총생산 362만대 가운데 포드가 167만대를 기록한 1923년 이듬해부터 생산과잉과 대체수요 발생으로 단순한 디자인의「포드 T-Model」에 싫증을 느낀 수요자가 외면하기 시작하였고, 포드사는 다양한 수요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GM의 추격에 밀려 결국 오늘날까지 GM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편 1908년 GM을 창업한 위리엄 듀란은 2년후「Buick」,「Olds」,「Cadillac」등 25개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1923년부터 알프레드 슬로안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세계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졌다.
BIG3의 세계진출과 유럽시장의 확대
미국의 BIG3(GM, FORD, CHRYSLER)는 1920년대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에 진출하여 유럽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 진출한 미국의 현지조립공장은 유럽의 고관세장벽 때문에 현지에서 일괄생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꾸었으며, 미국의 제조기술과 유럽메이커의 최고기술을 향한 노력이 더해져 유럽시장은 적정생산규모를 확보하였고, 다양한 제품개발로 1950년부터 이후 세계 최대의 생산지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초 유럽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장의 85.9%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은 해외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시장변화에 둔감하였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 기존 제조방식이 최적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유럽메이커들은 제품차별화와 시장세분화 전략을 통해 서서히 세계자동차산업의 강자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자동차산업의 경쟁대열에 진입하면서 독특한 생산방식을 개발하는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한편 1970년대초 유럽의 시장규모와 생산대수는 미국을 능가하기에 이르렀으며, 1950년 37만대에 불과하던 수출은 1970년 189만대로 증가하여 세계 최대의 수출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본의 세계제패와 미·일· EC의 3극화체제 형성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1920년대 GM과 FORD의 진출로 대량생산의 기반이 다져졌으나, 1936년 외국기업을 배제하는 법규가 제정되어 독자적으로 자동차산업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목적과 트럭중심의 형편없는 구조로 산업은 매우 취약하였다. 1950년대에 들어 한국전쟁에 따른 특수경기, 군수산업기술자의 민수사업대거 참여, 정부와 업계의 외국차 진출제한, 승용차 중심으로의 산업전환 등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1960년대들어 세계무역장벽 완화로 자동차무역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일본도 수출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일본은 새로운 산업조직과 특유의 생산방식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었고「도요다생산방식」으로 대표되는 「간판방식」과「JIT방식」에「TQC」가 확산되면서 일본 특유의 제조철학이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제조기술은 가일층 개선되었고 여기에 1968년부터 불붙은 자동차대중화(Motorization)로 내수기반이 확장되면서 대량생산과 저코스트의 생산자로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갔다.
특히 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때 연료소모가 적은 소형차급에서 완전경쟁우위를 확보함으로써 1970년에 이미 530만대 생산기록을 세우고, 1974년에는 268만대 수출로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하여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3극화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신흥공업국의 세계 진출
미국·일본·유럽의 3극체제 속에서 1980년대부터는 개발도상국과 동구제국이 저임금과 양산체제를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국가가 별로 없었다. 한국은 1962년 완성차 수입 금지와 함께 국산화 정책, 중화학공업 정책, 수출산업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80년대 고도성장에 따른 자동차대중화 진입을 바탕으로 소형차가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세계 5위의 생산대국으로 부상하여 신흥공업국 중 가장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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